가족예배 중 묵상한 창세기 31~33장에 나타난 야곱을 통해...큰 담대함과 타산지석의 교훈을 받았다.
외삼촌 라반의 집을 떠나라하는 하나님의 계시 앞에...
집에 다다라 형 에서와 만나기 직전에...
야곱의 자신의 생각을 대입시켜, 하나님의 계획을 어지럽게 만들어 하나님이 직접 간섭할 수밖에 없도록 했다.
하나님께서 가라했을 때... 모든 환경은 이미 열린 것이었다.
하나님의 언약 앞에 그저 담대했으면 되는 것이었다.
외삼촌에게 이제 때가 되어 하나님의 뜻을 따라 떠나겠다고 했으면 되었고, 형 에서를 만나 지난 날을 사죄하고 다시금 충성스러운 동생으로 다짐하면 되는 것이었다.

그런 감동 앞에 담대히 행했으면 하나님은 라반의 꿈 속에 나타날 필요도 없고, 야곱의 식솔들과 하인들은 떼를 나누는 수고로움도 없어도 되고...여러 사람 피곤하게 할 필요도 없었으리라.

오늘 나는 그렇다. 큰 일을 끝냈는데... 이건 이미 3년 전에 끝났었어도 되는 일이었으리라.
내 스스로 그어놓은 한계.... 아마 안될거야...그러다 큰 일 날거야...
하나님은 인내하셨고 도우셨다.
오늘 오전 그 모든 일들이 일사천리로 진행되면서, 마음 졸였던 지난 몇 일, 몇 주, 몇 년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고 만에 하나 있을지도 모를 불안함이 순간순간 나의 사고를 가로 막았다.

번잡함과 번거로움으로 이어지는 내 사고는 순전한 불신앙이었다.

오늘을 지나며, 모든 일 가운데 역사하신 하나님 앞에 드는 생각은 죄송함과 송구스러움이다.
그럼에도 인내하고, 혹여나 잘못될까 염려하신 나의 주님 앞에
오늘 나는 그저 고개를 숙일 뿐이다.
내 삶에 은혜가 없다면...나는 아무 것도 아님을 다시 고백한다.

나의 주 나의 하나님
오직 주만이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나로 더욱 겸손히 서게 하시고,
당신의 말씀 앞에 온전하게 하소서.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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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년들과 창조와 선악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아담의 실패와 타락... 그 후 메시아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예비하심에 대한 이야기로 접어들면서, 우리 청년 회장님이 던진 명제.... "이 모든 건 하나님이 이미 예정(결정)한 것인가?"...에 대해 고민해 보았다.

  내가 다니는 교회는 대한예수교 장로회에 속한다. 칼빈의 예정론을 중요 교리로 삼는다. 인류의 타락과 구원, 나를 부르심과 구원에 이르는 모든 것이 태초부터 예정된 것이라는 거다. 부인하지는 않는다. 나를 구원의 반열에 세우고자 하심이 하나님의 본심이며 계획이라는 것을...

  그런데, 하나님의 예정하심은 어느 정도 수준일까? 그 상황에서 if...else... 구문이 떠올랐다.
하나님은 에덴동산과 아담을 창조하실 때, 여러 장치들을 마련하셨다. 연극으로 치면.. 캐스팅...
동산중앙의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와 생명나무... 뱀으로 나타난 사탄, 아담을 꼬이는 하와... 난 그런 생각이 든다. 아담과 하와에게 이미 잘 짜여진 시나리오를 주고 그대로 이야기하게 시키진 않았을 거라고... 설정만이 존재한다. 각자의 역할과 본질, 심성의 선과 악 등의 성정에 대한 가이드라인 및 그를 활용하는데 있어서의 자유의지를 부여하셨다고 본다.

  그 뒤로부터는 선택과 그 선택에 따른 책임 및 결과의 역사가 인류사를 만들어온 것이라고 본다. 사람은 선택한다. 좋은 선택이던, 나쁜 선택이던... 최선이나..아님 차선... 아니면 해서는 안되는 선택인줄 알면서 자신의 의지를 장악하지 못한 나약함으로 후회하는 선택도 하게 된다. 더 나아가서는  선택의 결과를 예측하고 선택했지만, 여러가지 미지의 변수들로 인해 예상과는 다른 결과들이 초래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인류 타락의 역사 속에서 구원자 예수님의 예비하심은 무얼까?
아담과 하와는 선악과를 따먹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리고 하나님과 약속의 관계를 유지하며 에덴이라고 하는 낙원에서 그들에게 주어진 축복을 누리며 살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잘못된 선택의 결과, 그리고 후회, 회개로 이어지는 또 다른 선택의 상황에서 하나님 스스로 너무도 사랑했던 인류에 대한 애정의 끈을 놓지 못하고, 타락했지만, 성정과 심성적 이미지가 하나님을 닮은 부분이 있는 사람들로서는 하나님을 찾을 수 밖에 없고, 하나님의 구원의 약속을 통해 죄속에 사는 것과 반대편에 서 있는 사람들에 대한 구원의 계획 또한 인류창조의 역사 속에서 분명하게 만들어진 징표요 약속으로서 예수 그리스도가 존재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인류를 창조하실 때... 당신의 형상(image)을 따라 지으셨다고 한다. 이 땅에서 사탄의 매혹적 유혹 및 간섭 속에서 인간은 선을 기억할 수 있는 영성을 지닌 것이다. 그러기에 수시로 실수하고 타락하지만, 창조본연의 선함으로 돌아오고 싶어하는 것도 인지상정이다. 그러기에 이스라엘의 역사가 우상숭배로 인한 범죄와 타락, 징벌, 회개로 이어지는 반복적 상황들이 만들어진 것이다.

  그래서 난 그렇게 생각한다. 인류역사의 계획은 하나님의 것이 맞는데, 모든 선택의 상황과 결과들은 우리의 것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책임도 우리가 져야 한다. 하지만, 우리가 감당하기에 버거운 부분이 많고, 그 핵심이 구원의 문제다. 인류 스스로가 원죄의 유전을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실수할 수 있는 한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 및 성령 하나님에 대한 예비된 선물로 우리가 우리의 자리를 회복할 수 있는 영광을 주신 것이다.

  하나님의 계획으로 수렴되어져 가는 내 인생을 보며..............감사함으로 오늘을 살기를 기도한다.
Posted by 다울의 꿈

내 삶에 작은 기대와 소망이 생겼다.
오랫동안 침묵하고 있는 나의 믿음과 신앙의 행보에 일신우일신하며 나를 새롭게 돌아볼 채찍이 생겼다.
믿음으로 교제하며 양육했던 경험이 10년은 넘어 보인다.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성경도 열심히 읽고, 기도도 열심히 하고, 교제도 열심히 하던 나의 모습은 직장생활에 바빠지던 2000년대 초반부터 희미하게 사라져가고 있었다.
결혼도 하고, 아이도 생기고... 더 이상 나는 나 혼자가 아니었다.
그로부터 평범한 크리스찬으로 주일만을 겨우 지키며, 양에 차지 않은 신앙생활을 하고, 늘 부족함으로 하나님 앞에 민망함과 죄송함으로 서 있었다.
때론 청년때처럼 믿음의 교제를 하고 싶어 안달이 나 있기도 했다.
하지만 늘 마음뿐이었다.
교회엔 청년들도 사라지고 없었다.
교회는 점점 지쳐가며, 나이 많은 분들 중심으로 모든 것이 돌아가고, 일종의 악순환 상황만이 펼쳐졌다.
물론 젊은이가 비워버린 빈 자리를 지키신 분들의 열정은 청년 이상이다.

나는 오늘 하나님의 오래참으심과 기대하심을 보았다.
지난 몇 년간 미국에서 카자흐스탄에서, 대한민국 각지에서 서로 가까이서 교제할 거 같지 않던 청년들이 지금 이 순간 한 곳에 모여 그간 외지에서, 또는 교회 안에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거듭나고 있었던 것에 대한 경험을 나누며 오랜만에 뜨거워진 내 가슴을 드려다 보았다.
하나님은 이렇게 예비하셨다.
그리고 그 열정을 가진 사람들이 같은 시대, 같은 상황 속에서 같은 마음을 품고 청년이란 이름으로 모여, 에스겔서의 마른 뼈를 다시 살리는 하나님의 선한 도구로 흰돌교회에 부름을 받았다.

나는 본다.
이들의 꺼지지 않는 믿음의 불길이 청년다운 열정과 사랑으로 이들의 개인적인 삶뿐만 아니라 이들과 만나고 생활하는 모든 이들의 영적 에너지를 충만하게 하는 하나님의 불씨로 사용될 것이라는 것을...
그리하여 잠자고 있는 흰돌교회가 성령의 충만함으로 부흥의 불길을 일으킬 그 날을 바라 본다.

하나님은 오늘도 역사하신다.
Posted by 다울의 꿈

히브리서 6장 3절 말씀이다.

몇 주 전... 내겐 간절함이 있었다. 하나님의 뜻에 대해....
내 삶에 하나님의 간섭이 필요했다. 내 의지와 결심이 너무 약하여... 그래서 구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입니까?
그리고 히브리서 기자의 마음으로 말씀을 대했다.
하나님, 당신의 뜻이라면... 우리는 그리하겠나이다.
그것이 얼마나 큰 믿음인지 안다.
내 의지...내가 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른 다는 것이...
믿는 사람으로 입에는 착 달라 있는 말씀이지만, 그것은 그닥 내 행위와 일치되지 않는 이율배반적인 말씀이었다.
하지만 중대한 결정 앞에는 여쭙고 싶었다.
그런데 이 말씀이 새롭게 결성되는 청년회 모습을 보여 다시 내게 상기되었다.

이들이 이렇게 모일 수 있는 것은 결코 개인적 의지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God permitting이 우선되는 것이다.
그리고 We will do so.가 따르는 것이다,
So...그렇게...하나님이 기대하시는대로...
그러면 우리 앞에 선을 행하시는 하나님의 섭리가 우리 가운데 함께 할 것이다. 그리고 기쁨 가운데, 우리의 젊은 시절이 만들어져 갈 것이다.

다시 한 번 청년들의 뜨거운 눈물과 열정을 기대해 본다.

Posted by 다울의 꿈
캄보디아의 4월은 가장 더운 시기란다.
태국이랑 인접한 나라라는 것을 깜박했다.
작렬하는 태양... 습한 온도... 한낮의 길거리를 돌아다닐 엄두가 안난다.
그런데, 거기서 살아가는 그네들은 더위가 그닥 장애물이 아닌 것 같다.
그래서 미안해졌다. 그 속에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는데...
도심은 약간의 번잡함을 가지고 있지만, 한국에서 느끼는 복잡함과 조급함은 없다.
농촌의 모습은 더욱 여유롭다.
가난이 불행이 아니라고 주장하듯, 이들의 표정은 헤맑다. 근심의 표정보다 삶에 대한 여유로움과 담담함이 묻어 있는 듯 하다. 예전 우리 동네를 회상하며 그들의 여유가 계속 그렇게 있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Posted by 다울의 꿈

2010년 4월 4일 ~ 9일(금) 캄보디아를 다녀왔다.
캄보디아 VealThom에 있는 흰돌 비엘톰 교회 완공에 따른 헌당예배를 드리기 위해....

그들의 모습은 안타까움으로 다가왔다.
교회에 들어가는 입구부터 마중나와 손을 흔들어 주는 주일학교 어린이들은 나로 하여금 미안함에 눈물 짓게 만들었다. 캄보디아에 도착해서 처음 느낀 감동이었다.
난 아무 것도 준비하지 못한채, 그들보다 잘 사는 나라, 넉넉한 환경에 귀빈으로 대접받으며 갔는데,
그 아이들은 그토록 친절하게, 그리고 간절히 나를 기다리면 맞아 주었다.

캄보디아 길거리에서 만난 구걸하는 아이들과는 달리... 아이들의 영혼은 맑았다.

이런 기다림을 받아본 적이 언제인지..? 교회 입구부터 도열하여 우리를 기다리는 비엘톰 교회 어린이들^^
헌당예배를 기다리며 본당을 점유한 아이들... 하지만 곧 본당을 어른들에게 양보하고 교육관으로 이동~
왼쪽은 현지에서 헌신하고 계신 한성호 선교사님.. 그리고 오른쪽은 우리 목사님
얼굴이나 피부색, 언어는 다 달라도 기도하는 모습은 참 아름답네요.
비엘톰 교회를 섬기는 스테판 사역자... 우리로 치면 목사 안수 받기 전 전도사님이시죠~
미리 준비하진 못했지만 즉석에서 드리는 특송
캄보다이 흰돌비엘톰 교회 헌당예배를 드리고 나서 남은 사람들을 추스려 단체사진 한 장^^
Posted by 다울의 꿈
고 박정희 대통령이 베트남의 티우 대통령과 청와대에서 회담을 하고 있었대요.....

창밖을 내다보던 티우 대통령의 눈을 사로잡은 것이 있었는데,
바로 뜰에 소담스럽게 핀 목련꽃 이었습니다.....

이를 안 박 대통령이 티우 대통령의 귀국길에 목련의 묘목을 선물했고,
그는 크게 기뻐하며 이를 베트남에다 옮겨 심었더랍니다.....

시간이 지나....
목련은 무성하고 튼튼하게 자라났는데,
이상하게도 그 소담스런 꽃이 아무리 기다려도 피지않았다고 하거든요.

결국 우리나라의 저명한 대학의 식물학자에게 문의를 했고,
그 분은 이렇게 대답했다지요....


"목련이란, 혹독한 추운 겨울을 겪어야 비로소 성숙해지고.... 아름다운 꽃이 피게 된답니다.
그런데, 베트남은 일년내내 사시사철 따뜻하기만 하니까....
그 곳에서는 결국 아름다운 목련은 영원히 필 수가 없게 되는거죠...."


가장 혹독한 시련이 없으면,
가장 아름다운 꽃은 결코 피어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불공평한 시련을 겪는다는 핑계로,
하나님께 삿대질 하듯.... 자기 자신을 더 죄악된 행위 쪽으로 이끌어 가곤 하지요....

우리에게, 하나님은 토기장이 이십니다.....
토기장이는 그릇을 빚을때 더 아름다운 그릇을 빚기위해,
흙반죽을 내리 치기도 하고.... 뜨거운 불 속에 집어 넣어두기도 하지요.
그런 가운데, 그릇은 점점 아름답게 변해간답니다....

주안에서 ,
시련은 오히려 축복입니다.....
Posted by 다울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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