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가끔 착각에 빠진다.
자기 자신의 능력과 역량에 대해서....
중고등학교 시절... 학교에서 시험을 볼 때, 아주 가끔(?) 눈 앞의 점수를 위해 컨닝을 하곤 했다.
그리고 노력한 것에 비해 좋은 점수를 받는다.
성적표에 기재된 점수를 보고 아주 만족해 하며, 선생님과 부모님께 칭찬을 듣는다.
그리고는 그 점수가 진짜 내 점수라는 착각을 하고 살아간다.
그러다가 내 실력으로 시험을 보고 점수가 나왔을 때, 그 점수와 나의 능력을 동일시하지 못해 방황하고 번민한다.
원래 내 실력은 이게 아닌데, 점수가 이리 나왔다고...

어른이 되어서도 그런 사람들을 자주 대한다.
내가 데리고 있던 몇 몇의 친구들도 그렇다.
그 친구들을 독려하고 격려하기 위해 그 친구들의 가지고 있는 진짜 역량보다 기대하고픈 이상치에 대하 기대감을 심어준다.
그리고 그 친구들이 느끼지 못하는 공간에서 그 친구들을 지원할 수 있는 많은 사람들과 그 친구가 최대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많은 장치들을 마련한다.
그러면 가끔 그 친구들은 자신들의 결과물을 자신들의 능력으로 만들어진 것이라 착각하고 오만에 빠지곤 한다.
지금 이 글의 중심에 서 있는 친구에게도 그 사실은 적용된다.

어려운 일을 혼자 힘으로 했다는 착각에 빠진 거 같다.
나는 그 친구에게 이런 말을 하고 싶다.
거기 가면 죽는다.
여기서는 앞서 가는 선장 뒤에서 지시받은 일만 잘하면 되는 거였지만, 그만큼 올라간 연봉과 직급을 부여받았다면, 이제 그곳에서 너한테 홀로서기를 강요할 것이고, 혼자 선 것에 대한 외로움과 버거움으로 죽을 것이다.
아직 넌 그만큼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단다.
이미 결론이 난 일이라 더 이상의 할 말은 없지만, 너는 너 자신에 대해 좀 더 신중했어야 한다.

이제 너에게 지원은 없기에 애도를 표한다.
물론 이 것도 가정이며 가설이다. 자리가 사람을 만들 수 있다. 하지만 혹독한 시련을 네 스스로 견뎌내야지만 그 열매의 달콤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란다.

네가 지금까지 그렇게 일하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떠난다는 것에 아쉬움을 표한다.
Posted by 다울의 꿈
떠남의 이유
회자정리(會者定離) 거자필반(去者必返)
만난 사람은 반드시 헤어지고, 떠난 사람은 반드시 돌아온다.
즉, 만나면 헤어지고, 헤어지면 만난다.

만남은 후에 있을 이별을 위해 이루어지고,
이별은 다시 찾아올 만남을 위해 이루어집니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한용운 '님의 침묵' 중>

 
떠남에 대해 잠시 생각해 본다.
나의 떠남은 무엇일까?
도피? 회피? 도전?
나는 거창하게 내 인생의 후반전을 위한 떠남이라 이야기한다.
그럼 도전일까?
그럼 남은 자들의 슬픔은 무엇일까?
공허,허전함,피곤함,불안,두려움?
떠난 자리의 허전함이 잠시 평상심을 지배할 것이다.
하지만 환경의존적 동물인 우리에게 있어서 새로움에 대한 적응기제가 바로 발동하지 않을까?

내겐 표출하고 싶지 않은 두려움이 있다. 말이 화근이 되기에 꺼내기 싫은, 꺼낼 수 없는...
무얼까? 최악의 상황? 하지만 부등호는 최악의 상황보다는 건설적 미래에 더 집중되어 있기에 과감히 밟을 수 있는 것이 아닐가?
솔직히 지금 나는 마음이 무겁다.
남는 자들로 인해...
누구하나 가벼운 존재가 없기에...

다울에서의 희노애락.... 참 많았다.
솔직히 내 삶의 많은 자양분을 얻은 소중한 곳이다.
그리고 나와 함께 한 내 동료들... 함께 울고 웃고하며 술잔을 기울인 소중한 장소...

난 그런 기대를 해 본다.
어느 광고 CF에서 본 것처럼...
나의 일을 찾아 떠나기에 모두와 하이파이브를 하며, 내 짐을 들고 당당히 건물을 나서는...
정말 그러고 싶다.
나의 행복과 미래... 그리고 남은 자들에 대한 배려에 대한 최선을 그리며....

이젠, 이틀....
난 좀 더 강해져야 한다.
들판에 홀로 서 있는 나무와 같이...
아무리 모진 풍파가 온다 해도 든든하게....
요동할 수 있지만, 결코 물러설 수 없는 강인함으로...
거센 바람에 맞서 그 뿌리를 땅 속 깊숙히 내리는 감람나무와 같이...

불안을 보지 않고, 희망을 본다면...
꿈은 현실이 될 것이고...
그 현실은 나를 더욱 강하게 하는 동력이 될 것이다.

헤어짐은 슬프지만,
헤어짐 뒤의 또 다른 만남은
우리에게 지워진 삶의 무게를 조금은 덜을 수 있는 플러스 만남을 선물할 것이다.

동료들이여... 나의 사랑하는 자들이여...
우리의 슬픔은 조금만 갖고, 각자의 마음 속에 조금씩 조금씩 묻어가 보자.
너와 나.. 우리가 거자필반할 수 있는 새로운 만남의 기회를 기대하며...
Posted by 다울의 꿈

요즘 콘텐츠 뒤치닥 거리다 올해 사업 망칠 판이다.

잘 돌아가던 콘텐츠의 링크가 오류가 나던지... 아니면... 잘 보이던 콘텐츠가 상단만 보인다던지....


이유는 IE7.0, 플래시 플레이어 9.0이 배포되면서 부터다.

또 이면적 이유는 보안의 강화라는 대의명분 때문이다.


그래서 하위버전에서 잘 돌던 스크립트나 기능들이 제약을 받게 된 것이다.

물론 MS나 ADOBE 입장에서 피치못할 선택을 했겠지만...

우리같이 플래시와 HTML로 생계를 유지하는 콘텐츠 개발업체 입장에서는 생명이 위협되는 상황까지 갈 수도 있는 것이다.


우리의 고객사가 그런 상황을 인정하고, 그만큼의 돈을 낼테니 수정해 달라는 것이 아니라...

"갑"이라는 권력을 남용하여 개발사에서 당연 수정해야 한다고 윽박지르고 있는 실정이다.

안 들어주면 그 다음 프로젝트 수주에 영향을 받고...

비굴하게 들어줄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이다.


시장에서는 당장 서비스되고 있는 것들이 학습자 학습 환경에 따라서 되고 안되고 하니.. 다급하여 초급을 다퉈서 의뢰하고...

이에 관련한 기술적 정보를 가지고 있지 못한 우리 개발자들은 쌩쑈를 하며 해결책 찾기에 골몰한다.

그러다가 어렵사리 해결책을 찾아 문제를 해결하면, 고객사는 자기네 콘텐츠 만든 회사에 그 정보를 공유하고, 일반화시켜 버린다. 기술적 특화요소도 아니고, 노가다하듯 페이지 수정을 해야하는 우리 개발자들이 측은하다.


이건 순전히 플래시 기반의 콘텐츠를 만드는 우리에게 있어서 MS와 ADOBE가 횡포를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잘못도 아니고, 서비스하고 있는 고객사의 잘못도 아니다.

상위 신규버전을 배포할 때는 발생할 수 있는 위험요소를 고객에게 공지하고, 신버전을 패치하거나 업그레이드하도록 안내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독점적 지위를 이용한 횡포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서 거대독점 기업 엠에쑤와 아도비를 규탄하는 바이다....

Posted by 다울의 꿈
웹2.0의 철학적 접근이 아직 쇠락하기도 전인데, 여기저기서 웹3.0에 대한 이야기가 들린다. 웹2.0에서 강조된 것이 공유와 개방, 그리고 참여였다면, 웹3.0에 대한 논고에서 느껴지는 핵심은 "Mobility"인거 같다. 그리고 그 핵심에 서 있는 Device는 핸드폰으로 강조되고 있는 느낌이다.

이동통신업체들이 만들어 낸 상술일지 모른다는 의구심이 들기는 하지만, 최근에 하도 회자가 되고 있으니, 고민을 아니해 볼 수 없을 거 같다.

이른 미래에 급격히 현실화될 수는 없겠지만, 최근 핸드폰이 쇼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불가능해 보이지는 않는다. HSDPA는 거의 상용화되었고... 근대 이것도 아이러니하다. 패킷에 대한 고속 다운로드는 지원되는데, HSUPA의 패킷의 고속 업로드는 많이 들어보지 못했다. 결국 공급자 중심의 대용량 초고속 데이터 전송만이 현재의 한계인가?

여하튼 핸드폰을 통한 초고속 데이터 전송이 가능해 지면, 현재의 멀티미디어 기반 이러닝 콘텐츠의 급속한 핸드폰 Device로의 통합은 충분히 가능한, 예측할 수 있는 미래인 거는 확실한 거 같다.

문제는 UI와 학습객체의 형상적 문제이리라.
학습자가 시스템 내지는 콘텐츠와, 또는 동료학습자 간의 상호작용요소는 얼마든지 구현가능한데, 불가피하게 작아지는 화면사이즈를 극복할 수 있는 아이디어가 돌파구가 아닐까?

학습할 내용, 진짜 콘텐츠가 UI나 환경적 요소로부터 독립적이고 자유로워질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핸드폰 액정이 아무리 커진다고 해도 이동성을 보장하면서 커질 수 있는 것은 한계가 있다. 데탑의 모니터 사이즈를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은 없다. 핸드폰에 자체 빔프로젝터가 붙어서 화면사이즈에 대해 해방되거나, 홀로그램처럼 공중에 화면을 디스플레이할 수 있는 기술이 보편화되지 않는다면...

그렇다면 콘텐츠를 구성하는 텍스트와 이미지, 내레이션, 동영상 등의 하위 오브젝트들이 특정한 틀에 종속되지 않도록 외부개체로써 처리될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
어찌보면 만만한게 XML이다. 콘텐츠의 한 프레임을 구성하는 하위 데이터들은 XMl에서 간직하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나서 학습창(UI)는 서비스될 Device에 맞게 구현되고, XML에서 간직하고 있는 학습데이터들은 각각의 Device UI에서 흐트러짐 없이 보여줄 수 있도록 Device별 CSS가 그 역할을 충실히 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여기서 학습 콘텐츠가 가지는 아름다운 디자인은 약간 접어둬야 할 거 같다.
아니 어쩌면 그러지 않을 수도 있을 거 같긴한데, 얇은 내 지식으로는 잘 모르겠고....

학습데이터들을 XML로 처리하게 되면 콘텐츠의 수정과 보완에도 편리하지 않을까 한다.

요즘 제도나 법령에 대한 재개발 요구가 많은 것 중의 하나가 플래시 안에 박아놓은 내용들의 변경으로 참 많은 에너지를 쏟고 있는 현실을 보면 그러할 필요가 더욱 강렬하긴 하다. 
Posted by 다울의 꿈
한 5년이 되었나? 6년인가?
"을"로써의 삶을 살아온 것이....
지나고 보니 그 5년 이전 참 못된 "갑"으로 살았구나하는 회환이 드넹....

많이 굶주린 상태에서 먹는 자장면 첫맛은 천상의 맛이다.
굶어 죽지 않는 한... 배고픔의 극한에서 모든 첫 맛은 참아온 것 이상의 행복감을 준다.
하지만,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이 얘기하는 대로, 배고픔을 극복하고 포만감이 찾아오면, 행복감은 점차 사라지고, 투자한 것에 대한 이익을 조금이라도 챙기기 위해 열심히 젓가락질을 한다.

참 많은 "갑"들을 만났다.
모두들 다음을 이야기한다. 괴장히 박한 예산으로 "을"인 나를 움직이고, 내일의 희망을 쏟아부어 유혹한다.
그런데, 어는 "갑" 하나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애쓰는 인간 없다.

파랑새는 멀리 있지 않다.
지금 이 자리에 있다고들 얘기하고 있지 않나?
모두가 지쳐 쓰러지고,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나서 생각하는 파랑새는 지쳐 쓰러지는 상황, 잃어버리기 전 상황 속에 있었음을 뒤늦게 깨닫는다.

내가 생각하는 성공은 행복이다.
행복은 지금이어야 하고, 그 때가 성공의 자리에 있는 것이다.

독설과 불신으로 가득찬 곳에도 희망의 꽃은 핀다.
그런데, 실체를 향해 걷고 있을 때만이 현실이다.
모두가 힘들다 하면 힘든 줄 알고 들어도 보고.. 사람 사는 인정도 있고,
사람 냄새가 나야 이겨내고 싶은 욕구가 생기는 것 아닌가...
모략과 권모술수로는 버티지 못한다.

서로에게 최선의 모습이 되어주어야 하며, 시기는 지금이어야 한다.
실의와 좌절, 내지는 혼돈 속에 있는 영혼에게 필요한 것은 충고와 권면이 아니다.
영혼의 이야기를 하게 하고, 들어주는 것이다.
듣는 자의 잘남을 경청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초인이 될 수 있는 것은 확신하다.
바보라도....
과거의 내가 그랬고, 지금의 내가 그렇다.
하루를 사는 하루살이도 그 하루 안에 긴 인생의 길을 걷는다.
나서 생활인으로, 그리고 겸허히 자신의 하루를 반성하며 인생의 뒤안길로 사라지며....

내일, 내일만 이야기하지 말라.
나의 행복의 시간은 지금이어야 한다.
나로 인해 참 많은 것들이 불행해졌다.
나로 인해 참 많은 것들이 상실감을 가졌다.

고통하지 말라.
고뇌하지 말라.
영혼을 건강케 하라.
네가 지금 행복하고자 한다면 지금이어야 한다.

비교하고 비판하지 말라.
무능력한 아버지도 네 인생의 중요한 모범이었듯
너는 그 안에서 자랐고 그로 인해 지금이 네가 되었듯
너는 너에게 주어진 시간들을 즐기며 행복하고자 애를 쓰라.

내 인생의 마지막 주사위를 던지리라.
지금.. 여기서.. 내 영혼의 자유를 선언하며....

Posted by 다울의 꿈
요즘 "웹2.0 경제학 : 김국현 지음"이라는 책을 읽으면서 주변에서 회자되고 있는 웹2.0에 대한 개인적 정리를 하고 있다.
이제 1/3정도를 읽어나가면서 떠나지 않는 회의가 있다.

네이버 지식인에 그 많은 정보가 지식으로 자리잡을 때까지의 초기 투자...
NHN 정도의 규모가 능력이 없어도 가능했을까?
웹2.0이 표방하는 공유와 개방, 그리고 참여라는 부분에 있어서, 형식적 공간보다는 그 안에 담고 있는 콘텐츠의 질과 양이 승부수일텐데... 그런 적정 수준까지 도달하려면 초기 물량 투자라는 것이 가히 엄청날텐데, 그걸 어떻게..?라는 의구심이다.

이러닝 또한 형식과 내용의 궁합이 예술이어야 한다.
형식기관 성격의 LMS와 일종의 교과서인 콘텐츠, 그리고 그러한 콘텐츠를 관리하는 LCMS의 완벽한 하모니가 이루어져야 뭔가가 된다.
그런데 여기서 수익을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콘텐츠인데,
콘텐츠와 "개방", "공유"라는 컨셉은 자칫 기업의 비즈니스 모델을 위해하는 위험요소라는 생각이 번뜩 든다.
콘텐츠는 타 기관에 대해 비교우위를 가지기 위한 차별성이라는 것이 강조되고 있고,
지적자산 및 핵심영업 상품으로서 잘 포장하고, 맛만 보여주고 구매를 유도한다.

참여와 공유, 그리고 개방이라는 슬로건에 맞는 2세대적인 이러닝을 어떻게 구현해야 하고
또 무엇으로 수익모델을 만들어 낼 수 있어야 할까?

하나하나의 블로거들이 만들어내는 콘텐츠가 지식의 차원을 넘어 분류화되고, 목차화되는 것이 방법론적으로 가능해진다고 쳐도, 그것들의 유통에 어떤 제한을 거는 것은 웹2.0의 기본철학을 위배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여기서 본 글에 대한 잠정적인 결론을 짓자면, 웹2.0의 개념이 IT버블의 시대를 뚫고 생존한 인터넷 기업에 대한 공통분모를 찾아낸 것이기에 새로운 산업분야인 이러닝에 대한 새로운 옷을 재단하는 것이 맞다고 보며, 개개 지식과 콘텐츠에 대한 가치부여 방법에 대한 참신한 아이디어가 나와서 그 막연한 회의적 사고에 대한 명쾌한 해답을 찾아가 봐야할 거 같다.
Posted by 다울의 꿈

웹사이트나 웹서비스, 그리고 이러닝 콘텐츠를 만드는데 생각하고 염두해 드어야 할 것이 참 많다.
그간 SCORM이나 AICC, QTI에 대해서는 우리나라에서도 상당히 회자가 되어 어느 정도의 개념이나 실재 적용모델을 많이 봐왔지만, 최근 "해외시장 보급용 LMS 표준규격에 관한 조사연구" 보고서를 보면서 미국에서의 508조항을 보면서 나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또 하나의 익숙함으로 포기해야 하는 어려움에 봉착하는 느낌이다.

508조항의 명확한 명칭은 미국 재활법 508조를 지칭하는 것이며 장애인이나 노인이 정보통신 서비스를 이용할 때 신체적 장애로 인해서 차별받지 않도록 하기 위한 권장지침이다.

권장사항이기 때문에 민간기업이나 사교육기관이야 지키지 않아도 법적인 구속력은 없지만, 미국의 조달품목으로 공공기관에 납품해야 하는 경우에는 필수적으로 지켜야할 의무사항이다.

실재 위에서 언급한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508조항을 준수하는 미국내 LMS 제품은 조사된 52개 제품 중 총 38개로 73.1%에 달한다.

이는 미국진출을 준비하는 국내 이러닝 업체에 있어서는 크게 치명적이다.
너무 국내 정서에 길들여져 현란한 디자인과 깐깐한 CSS를 통해 구현하는데 익숙해져 있어
텍스트와 기본적인 심플한 디자인으로 구성되는 웹사이트를 참아내지 못하기 때문에
현재 만들어 놓은, 내지는 만들고 있는 이러닝 솔루션과 콘텐츠들이 미국시장 진출에 걸림돌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또한 MS의 총아인 ActivX를 통해 솔루션을 구현하며 국내시장을 누리고 있는 우리회사 입장에서도 난감한 상황이다. 평가솔루션과 저작도구라는 부분이 어플리케이션 영역으로 당연시하며 ActivX 기반으로 기술개발을 해왔기 때문에 웹표준과 508조항 준수에 있어서 숨이 막히는 것도 사실이다.

최근 Vista의 출현이후 그 난감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국내 대다수의 소프트웨어 개발업체들이 난리부르스를 추고 있는 이유도 웹표준의 동향과는 상관없이 익숙함으로 꾸준한 기술개발을 해왔기 때문이다.

이제는 IE뿐만 아니라 FireFox, 오페라 등에서의 구동환경도 염두에 두고 개발하기 위한 자구적인 노력이 필요하리라 본다. 이는 "W3C의 웹접근 준수", "Web2.0의 표준화 기준'을 이해하면서 발전시켜 나갈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요즘 연구과제 하나를 고민하면서 유럽시장을 바라볼 때 이러한 노력은 더욱 필요하다는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질 않는다.

Posted by 다울의 꿈
우리나라에서의 이러닝, 그리고 콘텐츠라 하면 상당히 정형화된 느낌으로 다가온다.

UI, 캐릭터, 동영상, 학습목차...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큰 압박은 전문가들에 의해 양산된다는 느낌을 받느다.
또한 내용의 구조화 보다는 그래픽과 애니메이션, 다양한 효과에 대한 기법들로
콘텐츠 퀄리티를 승부한다.

하지만, 무엇이 진정 중요한가?

학습자들이 몰입할 수 있는 콘텐츠의 생산이 절실히 필요하다.
그렇다면 학습자들의 몰입은 어디에서 발생하나?

학습자들의 "필요"이다.

모든 과정개발 및 교수설계는 요구분석에서 출발한다.
학습주제에서 목차, 내용전개 방식, 심지어는 글자크기나 색상, 성우의 음성, 캐릭터 등까지...

요즘 심각한 고민을 하고 있다.

전통적인 이러닝 마켓 플레이스를 넘어서서 누구나 지식의 생산자가 될 수 있고, 누구나 자신의 원하는 지식을 검색하여, 학습할 수 있는 지식의 생산, 유통, 소비를 일으킬 수 있는 지식e-Market Place를 기획하고 있다.

뻔한 얘기일 수도 있지만, 정형성을 탈피하고, 누구나 아이디어만 있으면 콘텐츠를 생산할 수 있는 웹기반의 저작도구와, 생산된 지식을 검색하여 지신만의 코스웨어를 구성하여 자신의 지식스토어에 등록해서 판매하는 지식 중개상, 그리고 필요한 지식을 검색하여 지식을 소비하는 지식소비자...

그 과정에서 몇 가지 지식의 거래를 위한 아이디어를 만들어 내고 있다.

이제 첫 발을 내딛은 수준이기는 하지만, 청사진은 섰다.
지식의 생산과 유통, 소비에 대한 아이디어를 구체화시켜 나가면서 본 블로그에 연재해 나갈 계획이다.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며 의견을 나누었으면 하는 소망이 있다.
Posted by 다울의 꿈

웹2.0의 철학이 참여와 개방인가?
우연히 몇 몇의 블로그를 방문하다가 충격 아닌 충격을 받았다.
이러닝에서 이미 이러한 고민의 상상력을 발휘하고 있는 선구자들을 보면서

나만의 가려운 영역이 아니었구나.. 하며

학습이라는 행위는 결코 인위적일 수 있는 것일까?
지식의 가치를 우리는 인정하고 있는가?
가치를 인정한다는 것은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지불할 수 있어야만 하는가?

학습이 정말 자발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가?
그러한 자발적 참여를 통해 이루어진 학습의 지속력은 얼마나 될 것인가?

공교육과 입시, 그리고 취업과 승진이라는 개인적 사회화와 성취감이라는
당근이 없다면, 자발적 학습사회가 이루어질 것인가?

이 대목에서 사람은 게으르며 성악적 존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또한 스친다.

서 있으면 앉고 싶고, 앉으면 눕고 싶고, 누으면 자고싶은 것이
인간의 몸이 원하는 바다.

그래서 수많은 학습이론에서 동기부여, 강화, 보상이라는 것이 끊임없이 연구되고 실험되는 것이 아닌가?

내가 생각하는 최고의 동기부여 및 보상의 방안은 [인정]이라고 생각한다.
나를 둘러싼 환경 속에서 인정받는 다는 것은 내가 존재하는 큰 이유이다.
인정의 욕구는 현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세대에 통용될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자녀는 부모에게, 부모는 자녀에게, 직장상사는 부하직원에게, 부하직원은 상사에게, 그리고 동료로 부터의 인정...

방법의 차이는 존재할 것이다.

말 한마디의 칭찬일 수도 있고, 가식없이 천진난만하게 웃어주는 웃음일 수 도 있고,
덧글에 달린 격려의 한 마디 있수도 있고, 어느 날 갑자기 내 손에 쥐어진 보너스 일수도 있고...

이러한 인정의 욕구를 이러닝 체제에서 어떻게 강화시킬 수 있을까?
그런데 나는 고민을 지속해야 한다.

업무과제로써 이미 시작한 상황이고, 블로그를 통해 많은 사람과 공유하며 이 이야기를 펼쳐 나가고 싶다.

Posted by 다울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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